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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Essay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2023-03-19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 Key word : 이상화, 마르크스주의, 사랑과 자유주의의 대립, 아름다움, 낭만적 테러리즘, 예수 콤플렉스, 낭만적 실증주의자와 금욕주의자

알랭 드 보통의 데뷔작. 알쓴인잡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것을 보고 유럽여행을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비행기에서 첫 장을 펼쳐서야 알았지만 이 소설은 내 첫 유럽여행과 꽤 깊은 연관성을 보였다. 작가는 스위스 출신이었고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 파리와 런던을 오갔다. 운명이라면 운명같은 만남은 내 여행길의 시작에 달콤한 향기가 되었다.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당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소설이라기 보단 철학서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진행된다기보다 자기 내면에서 끓어 오르는 생각과 사색들에 나름대로 이유를 설명하는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모든 문장 문장이 흥미로울 때가 많았고 철학적으로도 기존의 관념을 탈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읽으면서 형광펜을 가장 많이 쓴 소설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목차를 읽으면 마치 연애라는 작업의 Process를 보는 것 같다. 알고리즘처럼 모든 연애와 사랑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 과정들을 거치고 비로소 끝이 난다. 환희와 쾌락. 그 책임으로 따라온 고독과 절망까지 흐름은 지극히 보편적이고 단순하다.

그래서 줄거리라고 할것은 정말 별로 말할것이 없다. 사전의 진행을 사실기록의 느낌으로 매우 간단히 적고 그뒤론 모두 내면에 대한 관찰이다. 나는 이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철학서라는 관점에서 이 책은 사랑의 이론을 기술한 책들의 실현 시나리오 인것이다. 수많은 이론서에서 제시한 개념들을 사건들로 만들어 엮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가 우리 가슴을 동요하는것으로 마치 이론이 증명되는것 같은 현상을 보인다. 신선하고, 정겹다.

현재 사랑에 대한 이론과 가치관을 정립하는 두 책은 ‘사랑의 기술’과 바로 이 소설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이다. 모순적이게도 알랭 드 보통은 에리히프롬 같이 사랑의 문제를 이론으로 접근하는 사람을 낭만적 실증주의자라고 매섭게 쏘아붙인다. 이별의 후유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것은 에리히프롬과 사실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거. 소설 전체에서 그 자신도 낭만적 실증주의적인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사랑의 이론에 대한 부분은 에리히프롬 저 ‘사랑의 기술’ 독후감에서 더 자세하게 정리할테니 이 책에선 형광펜으로 메모했던 글귀들을 모으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 문서엔 그중 일부만 첨부하겠지만 나중에 메모한 부분들을 다시 읽으면 마치 책을 한 번 더 읽는 느낌이 들 것 같은 그런 책이다.


나의 실수는 사랑하게 될 운명을 어떤 주어진 사람을 사랑할 운명과 혼동한 것이다. 사랑이 아니라 클로이가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였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사람을 꿰뚫어보는 일을 중단하고자 하는 순간적인 의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 내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함을 찾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을 통하여 인간 종에 대한 불확실한 믿음[자기 인식에서 나온 모든 증거에 위배됨에도 불구하고]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욕망 때문에 나는 실마리들을 악착같이 쫓는 사냥꾼이 되었다. 모든 것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낭만적 편집증 환자가 되었다.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어떤 면에서 나보다 낫다고 믿어야만 한다면, 상대가 나의 사랑에 보답을 할 때 잔인한 역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안전하게 고통스럽다.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초한 달곰씁쓸하고 사적인 고통이다. 그러나 사랑이 보답을 받는 순간 상처를 받는다는 수동적 태도는 버려야 하며, 스스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책임을 떠안을 각오를 해야 한다

즉 사랑과 자유주의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사랑이 오래 전에 사라져버리고 껍질만 남은 결혼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각방을 쓰면서 출근하기 전에 부엌에서 만나 몇 마디 건네는 관계. 상호 이해에 대한 희망은 오래 전에 포기하고 대신 통제된 오해에 기초하여 미지근한 우정을 지속하기로 합의한 관계.

클로이와 내가 우리의 차이 가운데 일부를 넘어설 수 있었다면 그것은 서로의 성격에서 발견되는 막다른 골목을 가지고 농담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유머가 있으면 직접적으로 대립할 필요가 없었다

아름다움이 사랑을 낳을까, 아니면 사랑이 아름다움을 낳을까? 클로이가 아름답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사랑할까, 아니면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아름다울까?

진정한 미(美)는 아슬아슬하게 추(醜)를 희롱한다

“문제를 말하면 진짜 문제가 생겨”

“어떤 사람들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라 로슈푸코(La Rochefoucauld, 1613-80, 프랑스의 작가, 모럴리스트/역주)의 말

사랑은 절대 주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사회에 의해서 구성되고 규정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랑의 시에는 수치, 죄책감, 양면 공존 등의 감정에 대한 관심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리스인들은 동성애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기독교인들은 몸을 배척했다. 음유시인들은 사랑을 보답받지 못하는 정열과 동일시했다. 낭만주의자들은 사랑을 종교로 만들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광기를 드러낸다

나는 사랑이 외로운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천천히 내 마음에서 복잡한 통일성을 지니게 되었다. 일관성을 지닌,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사람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우리는 직선적 경계나 직선 없는 사랑을 갈망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분류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낙인을 찍는 것[남자, 여자, 부자, 가난한 사람, 유대인, 가톨릭 신자 등]에는 병적인 저항감을 느낀다.

나는 클로이에 대한 내 사랑이 그 순간의 나의 자아의 본질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이 한시적인 것으로서 끝을 맺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일부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비난에는 복잡한 이면의 의미가 깔려 있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싫어한다. 이것은 나는 이런 식으로 너를 사랑하는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싫다는 근본적인 주장과 통한다.

나는 바뀐 것도 없는데 왜 갑자기 수많은 점에서 기분 나쁜 존재로 비난받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베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오직 한 가지 대답밖에 할 수가 없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우리는 낭만적 테러리즘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도움과 관심을 달라고 울지만, 막상 그것을 주면 거부해버린다. 말없이 이해받기를 원한다. 너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너한테 삐치거나 질투심을 일으켜서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겠다. 그러나 여기에서 역설이 생긴다. 만일 상대가 사랑으로 보답한다면 그 즉시 그 사랑이 더럽혀진 것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종말은 이타주의와 이기주의, 도덕성과 비도덕성 사이의 충돌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두 충동 사이의 충돌로 나타난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랑 이야기,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선택된 사랑 이야기

나의 최초의 반응은 자기 혐오적인 것이었다. 우리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실패한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계속 클로이를 사랑했고 나 자신을 미워했다. 그러나 예수 콤플렉스가 생기면서 그 등식이 뒤집혀, 이제 클로이가 나를 찬 것은 클로이를 경멸할 만한, 잘해야 동정할 [기독교 미덕의 모범] 만한 증거로 해석되었다.

예수콤플렉스란 자기 방어 메커니즘에 불과했다.

성숙한 사랑은 절제로 가득하며, 이상화에 저항하며, 질투, 마조히즘, 강박에서 자유로우며, 성적 차원을 갖춘 우정의 한 형태이며, 유쾌하고, 평화롭고, 상호적이다[어쩌면 이래서 욕망이 무엇인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고통 없는 상태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를 거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금욕주의의 핵심에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실망시킬 기회를 주기 전에 스스로 실망해버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낭만적 실증주의자들은 쉽게 손에 쥘 수 있는 심리적 지혜를 얻는 문제를 단순화시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면 모두 고통 없는 사랑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냈다.

낭만적 실증주의와 금욕주의는 둘 다 사랑의 고민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한 부적절한 해답이다.


이렇게 보니 정말 책의 내용과 흐름, 정체성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스스로도 혼란스러웠던 흐름과 여러곳에서 묻어나는 사랑에 대한 이론까지. 그것을 개념화하지 않고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더 현실에 가까워진 기분마저 든다.